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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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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11 08:02 조회2,375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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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민군 총사령관 무정


 우리 동네 어른들은 전쟁 통에도 알량한 농사지만 가을걷이를 했다. 이 싸움 통에 동네의 민심은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한 집안이라도 사촌끼리, 동서끼리 사상이 달라 갈라서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부모 자식을 잃은 가운데서 서로가 서로를 손가락질하면서 네가 옳으네 내가 옳으네 하며 따졌다. 우리 마을을 비롯하여 38선 이북의 마을들은 곳곳이 이렇게 완전히 황폐한 공간처럼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도 우리들은 끼리끼리 모여 동네 아저씨 집 사랑방에서 아저씨들과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는 데 조력하기도 했다. 한참 가을걷이가 끝날 때였다. 물치 장거리에서 북으로 진군하는 군인들에게 들었다고 하면서 지금 원산 이북 쪽으로는 B-29 폭격기가 폭격을 하도 많이 해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했다. 특히 원산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다는 소식을 동네 아저씨가 전해 와서 할머니와 나는 원산으로 피신한 가족들을 생각해 공포와 슬픔에 젖어 울기도 했다.

어느 초겨울에 가까울 무렵, 우리 마을엔 또 커다란 이야기 거리가 하나 생겼다. 남조선을 해방시킨다며 낙동강까지 쳐내려갔던 인민군 보병의 총사령관 ‘무정 장군’이란 사람이 우리 집 바로 옆집에서 이틀을 묵고 간 것이다. 패전군의 사령관이지만 경계가 아주 삼엄했는데, 나도 그 집 마당에 나와 서 있는 모습을 담 밖에서 건너다보았다. 팔짱을 끼고 앞산 정승골께를 바라다보던 무정이라는 인민군 장군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어 나도 그가 나이 많은 어른이라 얼떨결에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말없이 서 있었지만 위세가 아주 당당했고 그를 본 온 동네 사람들이 말하길 키가 훤칠하고 아주 잘 생겼다고 했다. 무슨 팔로군 출신이라면서 어떤 면에서는 김일성보다 훨씬 더 높은 사람이라고 쑤군거렸는데 당시 이북에서는 최고의 거물급이라 하였다. 후일담이지만 6ㆍ25 남침 총지휘자였는데 낙동강 전투에서 패전하는 바람에 김일성에게 제거 당하였다고 했다.

이 무정이란 사람이 총지휘하는 인민군이 다부동 전투와 낙동강 전투에서 패하고 북상하는 중이었는데 그들은 먼저 퇴각한 행렬보다 더 초라하고 더 비참한 행색이었다. 이들이 퇴각군인 부대의 마지막 행군 행렬이라고 하였다.

12월 말쯤 되어 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또 난다는 것이다. 바로 중공군의 전투 개입 때문이었다. 동네 어른들은 서로가 눈치들을 보고 걱정이 태산 같았고, 한숨소리만 온 동네에 가득했다. 월북했다는 사람들의 남은 친인척들이 눈초리가 다시 사나워지는 듯한 낌새였다.

1월에 들어서자마자 하루 저녁에 물치리에서부터 강선리 등 송암산 쪽으로 올라가면서 온 강현 일대에 집집마다 난데없는 불이 나기 시작했다. 인민군대가 또 밀려오는데 그들이 머물 민가를 없애야 싸움하는 데 유리하다는 이유로 청년방위댄가 뭔가 하는 국군 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치안경비대라는 민간인 비슷한 사람들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초가집들에 불을 싸질러대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아주머니들과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우성치며 모두 매달려 초가지붕에 불을 붙이지 말아 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더러는 그들과 동네 사람들의 친분으로 불을 지르지 않고 넘어가는 집도 있었다. 물치에서부터 시작해서 강현 면 일대 강선, 회룡, 장산, 석교, 둔전, 간곡, 복골 곳곳에 불을 질렀는데 한 밤중에도 송암산 아래 강현의 온 고을이 훤하도록 초가집들이 활활 타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동네 중간부터 송암산 쪽 윗동네는 청년들이 많이 올라가지를 않아 불붙은 집이 초입새 한두 집 정도였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은 또 한 차례 난리를 치르게 되었다. 그 해 겨울엔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다. 눈 덮인 산야는 새하얗게 되어 깨끗해 보였고 고요했으나 집집마다엔 전쟁이 스치고 간 흔적으로 추수한 낟가리보다도 더 높게 근심들만 쌓여갔다.(계속)

 

 

댓글목록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

정말 실감나는 글입니다.
선생님의 글을
소설이 아닌 확실한 사실로 이해하고 논픽션(실록)이므로
빨갱이들과의 법적 분쟁에 사실 증명용으로 법정에서 사용해도 충분한가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

금강인 이는 모두 저의 체험 수기입니다.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댓글의 댓글 작성일

김선생님!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소개하려고요.
분명히 수기라는 것을 아울러 말해서 사실임을 밝혀주고 싶어서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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