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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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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10 03:43 조회2,03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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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동해 중부전선의 끔찍한 전쟁터 와중에서

 국군이 38선 이북 북괴 공산치하에서 억눌렸던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물치 장거리를 차량으로 지나 속초와 간성께로 행군한 그 이후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제는 다시는 전쟁이 없고 서로 맞대고 총질을 하는 일이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모두 다 북으로 퇴각해 인민군이 더 이상은 없는 줄 알았는데 패잔병 행렬이 다시 시작되었다.

청대리 뒷산

멀리 낙동강까지 진격해서 대한민국 국군과 싸웠던 인민군 패잔병들이 앞서 우리 마을을 지나간 인민군 숫자들보다 훨씬 많게 보름여나 양짓말 소금재 고개를 줄을 이어 넘어가는 것이었다. 마을 아저씨들이 말하기를,

“지금 저 인민군들이 훈련을 잘 받은 진짜 무서운 군인들인데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다가 모두다 국방군에 얻어맞고 저렇게 꼴사납게 거지행색이 되어 도망가네!”

하였다. 참으로 묘한 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국군은 모두 원산 쪽으로 치달으며 진격하는데 그 뒤로 인민군 패잔병들이 걸어서 이북으로 우리 국군들을 뒤따르듯이 해안 도로 큰길을 피하여 시골길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줄을 지어 퇴각을 하다니…….

그러다가는 어떻게 맞닥뜨리면 멀리서 위협사격을 하며 총성을 내고 그렇지 않으면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그저 어물어물 서로 조용조용 넘어가는 그런 형국도 있었다 한다.

패잔병들이 올라오다가 양양 낙산 해수욕장 남쪽 남대천 하단을 중심으로 갈벌 넘어가는 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고 쑤군대었다. 민간인과 군대 할 것 없이 무수한 사람이 거기서 죽었다는 바람에 낙산사 북쪽 강현 사람들은 갑자기 보따리를 싸가지고 북쪽으로 피난을 가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해변을 따라 멀리 갔다가 온 사람들은 고성 금강산 지나 통천까지 갔다 왔다고도 했다.

해변에서 조금 내륙에 사는 우리 동네 사람들도 낙동강까지 내려갔다가 사람들을 가장 많이 죽인 고약한 군대들이 이북으로 도망가며 동네 사람들이고 국방군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인다는 얘기에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이 크게 놀라 갑자기 피난 보따리를 싸 가지고 어둑한 저녁 때 소금재 고개를 넘어 북쪽 넘은들(넓은들이라고도 한다) 벌판을 지나 쌍천 벼락 바위를 거쳐 옹기점 중도문 뒷산 너머 청됀(청대리)까지 그날 밤 내내 북쪽으로 피난보따리 들고 이고 지고 피해 갔다.

청됀까지 갔는데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을 못 간다는 것이다. 지금의 속초 서남쪽으로 되린덕(도리원이라고도 함), 지금의 동우대학 동쪽 밑 벌판에 국방군 부대가 진을 치고 있는데 북으로 올라가는 피난민을 보면 총질을 해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네에서 머물러 있었다.

이튿날 저녁, 청됀 북쪽 산기슭에 후퇴하는 인민군 패잔병 부대가 마을로 들이닥쳤다. 산기슭과 마을까지 웅성거렸는데 어마어마하게 많은 군인들이었고, 부상당한 군인들은 마을 집집마다 배치되어 밤새도록 치료하며 아우성치고 북적댔다. 이로써 양쪽 군대가 대치한 한가운데에 놓인 피난민과 동네 사람들은 그저 전전긍긍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인민군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보따리에 들고 온 쌀이나 감자, 옥수수 등을 선선히 내주었다.

그 이튿날 아침, 여기저기에서 고함소리와 호각소리가 급하게 요란스레 나더니만 인민군들이 총을 들고 되린덕 벌판 배나무골 쪽으로 모두 몰려가는 것이었다. 인민군이 북쪽에 주둔하고 있는

되린덕 벌판 격전지(뒤로 달마봉과 울산바위가 보인다)

국방군의 진지를 뚫고 후퇴하려는데 국방군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바람에 필연적으로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때 산꼭대기까지 피해 가 숨어 있으면서 그 치열한 전투를 직접 목격하였다.

이상한 현상은 인민군은 북쪽을 향해, 국방군은 남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이 왔다고 좋아하던 피난민이 국군의 공격을 받는 이상한 위치에 놓이게 되어 마을 뒷산 방공호에 뿔뿔이 숨었다. 지금은 전쟁 영화에서 보는 그런 싸움이었는데 내가 생각하기는 내가 본 그때의 전투 장면이 더 무서웠고 양쪽에서 쏘아대는 각종 총소리는 참으로 무섭고 더 컸다고 생각된다. 화약 냄새가 진동하여 지금도 코끝에 그대로 묻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몇 차례인가 싸움은 반복되었고 그날 밤 인민군들은 속초 쪽 영랑호 서쪽을 따라 북으로 후퇴하였는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국방군이 패잔병 인민군들에게 후퇴하라고 일부러 길을 터 준 것이라 하였다. 이 전투에서도 죽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한다.

치열한 전투 한가운데 들어 있던 피난민들은 인민군이 철수하자 남쪽 마을로 돌아왔는데 곧이어 마을 어귀를 지나서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보름도 넘게 매일 매일 북쪽으로 올라갔다. 엄청난 인민군 패잔병과 부상병들이 양양 쪽에서 해안 길을 피해 설악산이 가까운 내륙 길로 화일리, 장산리 윗길, 회룡리를 거쳐 우리 마을에 머물러 집집마다 묵어갔다. 심지어 다리가 없는 인민군을 대롱같이 커다란 망태기에 담아 나의 집 윗목에 먼젓번처럼 가져다 내팽개치듯 놔두어 식사 때면 부상병이 밥 가져오라고 고함을 질러 할머니가 허겁지겁 감자 삶은 것을 가져다주는 걸 본적도 있다. 가가호호마다 이러했다.

이런 가운데 국방군들과 인민군들이 맞닥뜨리면 곳곳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강릉 북쪽에서부터 원산 아래 통천까지에 머물러 멀리 피난가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살던 주민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올려 밀면 북쪽으로 피난가고, 내려 밀면 남쪽으로 피난가고 그때그때마다 누가 죽으면 울고불고 슬픔과 공포에 싸여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매일 같이 전쟁 속에서 헤매고 있었으니 이제까지 살아남은 것이 모두 다 기적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생각해 본다. 살아 돌아가는 군인들이 저렇게 많은데 그보다 죽은 군인들이 더 많다고 하니 이 땅의 남북 젊은이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투하다가 죽었다니 이 얼마나 끔찍하고 애통한 일인가? 또 민간인들은 얼마나 많이 희생되었는가? 이산가족이 전국을 덮어 그 한이 55년 뒤 오늘에도 풀리지 않으니 이보다 슬픈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끔찍하고도 끔찍하다.

먼저도 말했지만 당시 우리 집 아래쪽엔 종덕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아저씨에게는 친형님인 종순 아저씨가 있었는데 공산주의의 학정을 피해 한동안 38선 이남인 강릉 쪽으로 넘어갔다. 유순하고 마음씨 고운 아저씨는 친형님이 남쪽으로 내려갔다는 이유로 인민재판을 받았고, 몽둥이로 온 몸을 맞아 상처가 대단했다. 들것에 실려 집으로 오셨을 정도였다. 나중에 상처가 거의 다 나은 뒤에도 한쪽 다리를 잘 못 쓸 정도로 그 후유증이 오래가 질질 끌고 다녔다.

얼마 후 국방군이 들어와 마을에 주둔할 때 아저씨더러 다리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북쪽을 가리키면서 분하고 저주스런 목소리로 “아―! 인민군 놈들이 이렇게 했지.”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얼마 후 인민군이 내려와 같은 질문을 하니까 이번엔 남쪽 하늘을 가리키면서 “아―! 국방군 놈들이 들어와서 이렇게 했지.”라고 엉뚱하게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당시 어린 나였지만 친구들과 같이 아저씨의 그 일관되지 않은 처신을 몹시 우스워했다.

내가 거제도로 간 이후 청소년 때까지도 그랬다. 세월이 지난 먼 뒷날 그 때의 일을 다시 생각했을 때 농사만 지으며 착하고 순박하게 살았던 아저씨가 전쟁 도중에 가정을 지키고 살기 위한 나름의 방식으로 그러하였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 가득하다.

말 한번 잘못하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 중에 가정을 지키려고, 생명을 부지하려고 처절하게 살았던 종덕 아저씨 같은 순박한 우리 국민들! 일관성이 있는 행동을 했다면 경우에 따라 사람들의 목숨은 한순간에 잃게 되는 처량한 세월! 아저씨가 했던 행동을 이제야 진정으로 이해하며 아저씨의 영혼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사실 종덕 아저씨만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선 모든 국민들은 다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도자란 진정으로 모든 국민들을 서로 위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데 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평화는 나를 버리고 타인을 위할 때만 찾아지는 것이다. 사회 분열 대립의 구도는 또 다른 슬픈 충돌을 불러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끔찍했던 일제시대와 8ㆍ15 광복 직후의 혼란과 6ㆍ25 같은 슬픔이 다시는 없고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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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huhshine님의 댓글

청곡huhshine 작성일

감사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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