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6.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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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07 08:46 조회2,398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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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낙동강 패잔병 인민군의 퇴각행렬
9월도 중순이 되어갈 무렵부터 우리 동네에선 매일같이 비참한 구경거리가 연일 생겼다. 남조선을 해방시키려고 씩씩하게 나갔다고 자랑하며 기세등등하던 인민군 전사들이 기가 다 꺾여 초라한 패잔병이 되어 북쪽으로 후퇴하는 모습이었다. 국군의 진격과 UN군의 공습을 피해 해변 큰 대로로 퇴각하지 못하고 양양에서 내륙 송암산 아래쪽으로 2km 떨어진 화일리에서 회룡리로 이어지는 우마차가 다니는 농로를 따라 후퇴하고 있었는데 우리 동네를 가로질러 퇴각하는 것을 보는 그런 구경거리였다.
더러는 높다랗게 말을 탄 남녀 장교들도 보였지만 대부분 ‘딱쿵장총’과 ‘따발총’을 거꾸로 맨 그야말로 초라한 걸인행색의 군대 패잔병 도보행렬이었다. 부상병이 어찌나 많은지 그 처참한 모습은 어린 우리들도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던 생각이 난다. 행군 중이었는데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며 들것에 실려 가는 군인도 부지기수였다.
한쪽 팔이 없는 군인, 양쪽 팔 모두가 없는 군인도 있었고, 들것 위의 군인들은 다리가 없는 군인들이었다. 한쪽 다리를 다친 군인들은 엉성한 목발을 하고 걸었고, 어떤 여자 군인은 배가 아주 불러 곧 출산할 때가 되었다고 동네 누나들이 손가락질로 배부른 흉내를 내면서 킥킥거리면서 쑤군거렸다. 나보다 키가 조금 클까말까 하는 어린 군인이 자기키보다 더 긴 장총을 질질 끌며 가는 모습도 많았다. 한 마디로 처절한 지옥행렬 같다고 동네 어른들이 말했다.
동네 누나들과 아주머니들은 물동이를 가져다가 지나가는 인민군들에게 물도 떠 주곤 했는데, 인민재판을 받아 몸이 성치 않은 종덕 아저씨와 동네 아저씨들은 물을 떠다 주는 사실을 알고는 화가 나서 아주머니들과 누나들을 향해 “그깟 놈들에게 무슨 물을 떠다 주느냐!”고 야단을 쳤다. 그 바람에 물 떠다 주던 누나들은 훌쩍훌쩍 울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날도 우리들과 야단맞은 누나들은 어린 동생들을 등에 업고 점심 먹을 때만 제외하고, 어떤 때는 점심도 걸러 가며 하루 종일 길가에 서서 패잔병 행렬을 구경하다가 지쳐서 목말라 하는 패잔병들에게 또 물을 떠다 주었다. 패잔병 행렬은 보름도 넘게 계속 되었다.이 런 행렬은 이듬해 1.4 후퇴 이후 인민군이 중공군과 남쪽으로 쳐 내려갔다가 4월 복숭아 꽃 필무렵 다시 북쪽으로 퇴각할 때도 똑 같은 양상이었다.
하루는 패잔병들의 퇴각 행군이 우리 동네에서 멈추어 하룻밤을 지내고 간 일이 있었다. 집집마다 인민군 여럿이 빼곡하게 찼는데 멀쩡한 군인들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상처가 심하게 난 부상병들이 큰 문제였다. 우리 집에도 부상병들이 아랫방 윗방에 묵었는데 윗방의 부상병은 팔다리가 모두 다 절단이 나서 수족을 못 쓰게 되어 그냥 방바닥에 누워서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고함만 지르고 있었다.
나는 몹시 겁에 질려 그 아파하는 인민군 부상병 아저씨를 힐끗 힐끗 건너다보았다. 할머니가 감자를 삶아서 나더러 갖다 주라고 해서 삶은 감자를 뚜가리(나무로 깎아 만든 그릇)에 담아서는 뜨겁다고 야단치는 그 아저씨 입에 “후― 후―” 불어가며 넣어주던 생각이 난다. 몸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하여 코를 찌르고 그렇게 아파하면서도 입에다 넣어주는 감자를 허겁지겁 받아먹는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밤이 되면 어린 군인들이 상처의 고통으로 밤새도록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엉엉 우는데 할머니와 나는 그저 무섭기만 했다. 할머니는 나를 꼭 안고 독백하듯 되뇌었다.
“에 휴―! 전쟁은 하지 말아야지! 제발 전쟁은 하지 말아야지 저 어린사람들이―”
하면서 어린 군인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던 생각도 난다. 돌이켜보면 그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청년들은 순박하고 선량한 우리 땅의 같은 이웃들이었는데, 김일성의 욕심에 하수인들이 되어 전쟁 통에 나아가라면 나아가고, 물러나라면 물러나는 운명에 처한 것이었다. 같은 민족이 서로 적이 되어 그렇게 동족을 죽이는 살육의 장으로 내몰리어 그런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니…….
젊은이들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처참한 전투지역으로 몰아넣는 전쟁의 상흔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처참하고 또 무서운 것들뿐이었다. 이런 행렬이 네댓 차례 지나가고 또 며칠간은 조용하였다. 9월 말경 동네 아저씨들이 수군대며 국방군이 곧 들어온다고 하며 해방이 된다고 했다.
10월이 되기 바로 며칠 전날인가, 한밤중에 아래 동네에서 얼마 전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놀라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나이 많은 동네 형이 있었는데, 전쟁이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다고 갑자기 고함치며 다녔다. 워낙 겁에 질린 동네사람들이라 서로가 원인규명이나 따질 새도 없이 혹시나 하고 온 동네가 간단한 보따리만 챙겨들고 한 군데 몰려 갑자기 엄청난 피난 행렬이 되었다. 아래 복골 절벽 아래 강현천변으로 이어지는 넓은 벌판에 물치 장거리
댓글목록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이 글은 꼭 책으로 나오는 거 맞죠?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금강인님 안녕하십니까? "내가 겪은 6.25" 연재물은 시스템 클럽에서 처음 시작할때 저의 전체적인 소개 글이 있습니다. 2007년 6월 20일에 이미 초판으로 책이 나왔고 2007년 7월 25일에 2판 일쇄 그리고 3판에 해당하는 책은 2010년 4월 20일에 증보판으로 나왔습니다. 출판사는 도서출판 서울 명문당입니다. 문의 하시려면 전화번호 02-733-3039와 02-734-4798번으로 하시면 됩니다. 여기 게재된 글은 저자인 제가 출판사 허락을 얻고 연속으로 게재해 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