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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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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08 01:07 조회2,167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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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50년 10월 1일―나의 태극기 사랑

 9월 마지막 날 오후 동네 아저씨들이 이 집 저 집 다니며 알려 왔다. 내일 물치 장거리에 모두 국방군을 환영하러 나간다고 했다. 준비물은 태극기인데 네모난 흰 종이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동그라미 가운데 선을 그리고 위에는 빨간색 아래는 파란색, 동그라미 주변 네 모퉁이에 비스듬히 검정색으로 세 개씩 선을 그려서 손에 들 수 있는 깃발을 만들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농사만 짓는 우리 동네 많은 사람들이 글자를 배우지 못했고,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나에게 만들어 보라고 하여 내가 대충의 얘기를 듣고 할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극기를 생전 처음 그리게 되었다. 방바닥에 종이를 깔고 그 가운데에 커다란 뚜가리를 엎어 놓고 연필로 사발 언저리를 따라 동그라미를 커다랗게 그리고 대충 들은 말을 근거로 태극기를 그렸는데 제일 가관인 것은 원 한가운데는 원의 중심점을 지나는 선이 직선이었고 위에는 붉은색 아래는 푸른색 이런 정도였다. 동네 누나들이 물감을 타고 나는 그리고…….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기대하는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참으로 우습기가 짝이 없는 형국이었다. 내가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이 그려 도덕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태극기를 보았는데 규칙에 맞게 원칙대로 그린 태극기였다. 아주 정교히 잘 그린 것을 보고 내가 그리던 그때를 생각하고 실소를 금치 못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도 교사에게 제출한 것 중 제일 잘못 그린 태극기도 그때의 나의 태극기에 비교하면 최고로 우수한 태극기라고 할 만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태극기가 아닌 태극기를 그린 것이다. 그래도 내가 그린 태극기를 보고 “찬수가 태극기를 잘 그린다.” 하면서 너도 나도 태극기를 그려 달라는 바람에 신바람이 나서 여러 장의 태극기를 그려 드렸다.

태극기의 음양, 사괘는 처음부터 모르고 그저 네 귀퉁이에 짤막한 굵고 검은 줄 세 개씩을 그려 가운데 원을 둘러싸고, 배치 등 규격이 한 군데도 맞지 않은 그런 태극기였지만 갑자기 태극기 제작의 전문가(?)가 된 셈이었다. 한편 생각하면 그때의 태극기는 참으로 나의 나라사랑 정성이 가득 담긴 참으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태극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튿날 10월 1일, 김일성이 기습 불법 남침으로 6.25가 난지 석달 뒤에 대한민국 국방군이 38선을 처음으로 넘어 공산치하로부터 내 고향 양양을 해방시킨 날이다. 그날은 아주 쾌청했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아침 일찍 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물치 장거리터에 내려갔다. 온 동네 사람들이 양손에 태극기를 들고 내려갔다. 학교 운동회 날 등교하던 기분보다도 더 신나게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양양 읍내 쪽 낙산사 어귀에서부터 길 양쪽으로 이 고을 저 고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두들 마음이 들떠서 군대 행렬이 오지 않았는데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덩실덩실 춤들을 추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지금의 물치 농협 앞쯤 되는 곳에 모여 있었다. 나에게 증조모뻘 되는 일가의 좀 젊으신 쉴집(택호) 할머니는 벌써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들떠 있었다. 8ㆍ15 해방이 되고 얼마 뒤 그 할머니의 아드님 영배, 진배, 갑배 삼형제가 모두 월남하여 국방군 헌병이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 동네에서 비밀리에 다 아는 사실이었다.

드디어 국방군이 저기 온다고 술렁거리더니 맨 처음 나팔을 불고 큰 북을 쿵쿵 치는 군악대 차가 나팔소리도 우렁차게 천천히 들어오는데 나는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나팔을 부는 군악대 아저씨의 번쩍번쩍하는 철모가 아주 멋있게 보였다. 그리고 우렁찬 군가가 온천지에 울려 퍼지는 것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하늘을 찌르는 기개! 핫바지 입고 환영 나온 촌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웃으며 손을 흔드는 우리 국군의 위용! 북진하면서 부르는 국방군의 군가를 따라 어느덧 우리들도 그 가사를 금방 익히고 그 길고도 긴 진군 차량을 향해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터져라고 외치며 함께 불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거리 국군 환영 인파

그 군가! 그 만세 소리! 그 환영! 자유의 감격! 암울한 공산 치하에서의 해방! 8ㆍ15 광복 때는 이보다 더했다지만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어른들만 쳐다보고 그저 좋아하기만 했으나 어느 정도 철이 든 뒤에도 생각해 보면 이때의 감격은 내 평생에서 지워지지 않는 환희의 장면이었다. 아마 암울했던 공산치하에서 살다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따뜻한 품에 포근히 안긴다는 감회 때문이었으리라.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1950년 10월 1일, 이 날이 우리 대한민국의「국군의 날」이 되었다고 한다. 김일성의 6․25 새벽 불법 기습남침이 있은 후 3개월 하고도 6일이 지난날에 우리 대한민국 국방군은 서해 옹진반도로부터 동해 양양군 현남면 기사문리에 닿는 38선에 이르기까지의 전 전선에서 쫓겨 가는 인민군을 격파하면서 38선을 처음으로 돌파하여 북진 한 날이다. 인공치하에 갖은 고난을 다 겪으면서 대한민국 국군이 올라오기를 학수고대하고 기다린 우리 주민들을 구출하여 해방시킨 감격의 날이었던 것이다. 삼팔선을 돌파한 10월 1일 바로 이날을 기념하여 우리나라 국군의 날이 제정되었다 하니「국군의 날」이 아무렇게나 제정되었던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던 옛 일이 다시 떠오른다.(계속)

댓글목록

웅비4해님의 댓글

웅비4해 작성일

읽기만해도 감격스럽습니다
저도 태극기와 군악대 연주(Brass Band?)를 좋아합니다.
어릴적 고향이 참 그립지요?
이남으로 피난 나오시길 참 잘하셨습니다.

김찬수님의 댓글

김찬수 작성일

웅비4해님 안녕하십니까? 군악대 연주를 좋아하시는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6.25때 여기 저기 피난을 다녔으나 다행이도 1951년 8월 이후 제 고향 양양은 수복지구가 되어 자연적으로 대한민국 품안에 안긴 지역의 주민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요. 밤낮없이 기분 나쁘게 아침저녁 시도때도 없이 김일성 김정일 만세를 부르지도 않아도 되고 또 이제는 김정은이란 김일성 손자까지 넣어서 만세 부르는 팔자나쁜 이북 세상 주민이 아닌 곳임에 하느님께 감사 기도 드리니다. 어~휴~! 지긋지긋한 공산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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