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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6.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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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0-10-01 04:57 조회2,26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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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향에 남은 할머니와 나


 나는 학교 가는 날만 빼고는 매일 할머니 치맛자락만 붙들고 졸졸 따라다니다시피 하였다. 할머니의 나에 대한 정성은 대단했다. 할머니는 7남매를 낳았는데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다 유행병(주로 홍역)에 걸려 6남매를 잃은 충격과 한을 가슴에 가득 지니고 산 분이었다. 심지어 하루 저녁에 두 아들을 잃은 적도 있었는데 이로 인해 한번은 석 달 가량이나 정신을 잃고 지냈다고 했다.

오직 나의 아버지만 무녀 독남으로 살아나 성장한 것이다. 그러니 아들과 손자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대단하였다. 연년생으로 난 내 아우 때문에 나는 돌이 조금 지나 할머니 차지가 되었고, 할머니의 젖을 5살까지 먹어 젖이 나왔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주로 다른 집 농사일을 거들어 주고 겨우 끼니 되는 정도만 얻어 와서 우리 집 양식으로 했다.

할머니는 체구는 작았으나 워낙 부지런하고 기운이 세어 장정들이 지는 지게를 지고 일을 해 동네 어른들이 놀랄 정도라 하였다. 또 삼베 베틀에 앉아 하루 종일 삐이꺽 찰가닥, 삐이꺽 찰가닥 하는 소리를 내면서 북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왔다갔다 건네고, 그때마다 오른손 쪽에서 건네받은 북을 왼손에 쥐고 동시에 오른손으로 바디집을 잡아당겨 가로로 이어진 실을 다지고 한쪽 발에 베를 짜는 신을 신고 그 신의 코끝에 굵은 끈이 달려 베틀 뒤쪽 위로 이어진 끈이 잡아 당겨졌다가 풀어질 때마다 들리는 베 짜는 소리는 말로는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특이하고도 아름다웠다. 할머니의 베 짜는 모습과 누에명주실로 비단을 짜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한 폭의 예술적인 동작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 동네에서 베와 비단을 제일 잘 짰다고 소문이 났으니까.

아버지가 열다섯 되던 해 음력 동짓달 초여드렛날, 할아버지는 대포에 가마니를 짜러 갔다가 밀폐되다시피 한 방안에 숯불 피운 데서 가스가 나와 일산화탄소에 중독이 되어 48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 뒤에 할머니는 외아들을 데리고 억척스럽게도 세상 속에서 살았다. 세상에서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다 해냈다고 한다.

할머니는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공깃돌과 땅 따먹기 놀이 할 때 손가락을 굽혀 튕기는 사금파리를 동그랗게 다듬은 것이라든지, 심지어 자치기 막대까지 방 한구석에 신주단지 모시듯 잘 보관해 놓았다. 그리고 매일 저녁 옛날 얘기를 해주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우리 집안 내력을 노상 들려주었고, 특히 7대조부터 우리 집안의 가계 이야기라든지 조상님들과 얽힌 이야기, 할머니가 경험한 이야기와 이에 얽힌 동네 다른 집 이야기, 해방 전 함경북도에서 가장 유명한 전 포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할 때 나는 매일저녁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었다.

할머니가 얘기할 때 나는 할머니의 청수(聽手) 곧 지음(知音)이 돼 드린 것이다. 할머니가 입만 열면 나는 할머니의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다 알 정도였다. 내가 일흔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어도 나는 지금까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매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반복되는 이야기라도 할머니는 처음 말하는 것처럼 항상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내가 날짜라도 잊어버리겠니? 아무 해 동짓달 스무 아흐렛날 저녁이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

기억나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할머니는 17살 되던 해 할아버지와 혼인을 했다. 할머니의 친정, 즉 나의 진외가는 양양군 서면 서림리 황이라는 곳이다. 바로 작년에 새로 생긴 양수 발전소 하부 댐 저수지가 있는 윗마을 황이라는 곳이다. 지금은 구룡령으로 길이 아주 잘 나서 홍천에서 쉽게 넘어 미천골 입구 쪽으로 올 수 있지만 예전엔 타지 사람들 구경도 잘 못하는 산골이었었고 사철 맹수가 출몰하였으며 특히 겨울철에 눈이 많이 왔을 때에는 사냥꾼들이 많이 모이는 그런 곳이라 한다.

17살의 나이에 시집온 할머니는 아주 부끄러움이 많아 농담 잘하는 시어머니(나의 증조할머니)의 말을 듣고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고 애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하루는 시아버님 즉 나의 증조할아버지가 농사일을 마치고 저녁 때 술이 아주 거나해서 들어왔다 한다. 증조할아버지는 술을 아주 좋아했는데, 술을 마시면 집에 들어와 밥을 먹고는 잠들지 않고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어느 날 증조할머니에게 술 더 가지고 오라고 술주정을 하는 바람에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에게 이러이러하게 일러 17살 된 할머니가 술 대신에 쌀뜨물을 걸쭉하게 퍼서 가져다 드리니 증조할아버지가 여러 차례 맛이 좋다고 들곤 주정을 더 심하게 했단다.

이튿날 일찍 증조할아버지는 고조모의 부름을 받아 몸을 생각하지 않고 과음하고 주정까지 한다고 야단을 맞곤 어색하게 증조할머니한테 다가와서는,

“어제 내가 주정을 많이 했나?”

하고 묻기에 증조할머니가,

“내 보다 보다 쌀뜨물 마시고 주정하는 양반 처음 보았네.”

하고 말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는 대뜸,

“아! 어제 저녁 새아기(나의 할머니)가 나중에 가지고 온 것이 쌀뜨물이었단 말이야? 어쩐지 내 주정이 좀 뜨더라!”

하고 농담을 했다. 할머니는 어른 앞에서 웃지도 못하고 혼자 장독대 뒤로 돌아 나가서 한참 동안 소리 내어 웃었다고 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할머니는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며 소박하게 웃으면서 얘기해 주었다.

할머니는 친정 동네에서 일어난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다. 할머니 동기간이 4남매인데, 딸 형제가 셋이고 남동생이 하나였다. 나에게는 진외가 댁 할아버지가 되는 할머니 동생은 기운이 천하장사처럼 세었고 성함이 이갑산인데 깊은 산골 마을에 눈이 많이 내리면 마을 청년들과 같이 사냥을 자주 하곤 했다.

당시는 호랑이를 비롯해서 곰이나 산돼지 등 맹수도 많았다. 눈이 많이 온 어느 날에 마을 청년들이 산골짜기에서 곰 몰이를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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