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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금지법은 폐기되어야한다'는 관리자의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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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03-22 14:08 조회3,1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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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제1권 2부는 ‘식민지 하의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오사카산업대학 후지나가다케시 교수, 미 시카고대학 최경희 교수, 산프란시스코주립대학의 소정희교수, 이 3인의 글이 방대한 분량의 논문으로 실려 있다.

위 논문들이 인용한 근거자료들을 보면 일본인들의 조사가 매우 많은 반면 한국인들의 조사가 매우 빈약하다. 국내학자들은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고, 정대협은 객관성이 결여된 감정적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이 분야를 연구하는 수많은 국제인들에게 망신스러운 결과만 초래했다는 게 이들 자료에 시사돼 있다.

                                일본군 위안소의 원조, 상해위안소

1. 위안부 문제가 일본에 충격을 준 것은 1991년 8월부터 위안부들이 잇따라 자기 존재를 밝히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한 소송을 전개한 일이었다.

자료상 확인된 바에 의하면 1932년 상해 위안소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며 중일전쟁 개시 이후 이 지역에서의 위안부 수가 최대 규모였기 때문에 상해 위안소는 타 지역의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상해 위안소 환경을 연구하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상해에는 개인적인 돈벌이를 위해 일본인 매춘여성(가라유키상)이 해외로 나간 가장 전형적인 케이스다. 상해 주재 일본영사관은 1880년대부터 가라유키상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이는 공창제도의 도입을 의미했다. 공창제도의 설치 동기는 1)강간방지, 2)군의 사기앙양 3)성병예방 4)방첩이었다.

당시 상해에서의 조선인 여성 실태는 이러했다. 상해에서 조선인 여성 댄서가 출현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여급도 출현했다. 조선인이 운영하는 사창도 있었다. 이들은 신흥접객부로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했다. 이러한 여성들은 불경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이 상해로 모여들었다.

1936년 당시 상해에는 조선인 여성 댄서가 37명, 이들은 풍속을 혼란시켰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음식점, 카페 등에서 일하는 조선인 여급은 48명,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밀매음을 하여 주인과 반반씩 나누었다 한다. 이 무렵 상해에는 290명의 조선인 사창도 존재했다. 사창이란 공창으로 인정받지 못한 곳이었다.  

만주사변 때 나타난 위안부는 기본적으로 매춘부 출신이며 그 중에는 조선인 여성이 일부 포함돼 있었지만 중일전쟁 중기인 1940년 무렵에는 조선일 여인을 강제로 데려다 위안부를 시킨 ‘성적 노예’들도 새롭게 출현했다. 중일전쟁이 전면화된 이후 위안소가 대량으로 개설되는 시기에 위안소 경영자 중에 조선인 이름이 꽤 있었다.

일본군이 개설했던 위안부는 1)군직영위안소 2)군이 감독-통제하는 군전용위안소 3)민간매춘소를 병사용으로 지정한 곳(민간, 군 공용) 4) 순수한 민간 전용 위안소(군이 다니더라도 그건 개인적인 일). 4번째 형 위안소는 일본군 위안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본군 고급 참모가 위안부 설치했다

1932년3,14자 상해 파견군 고급참모 오카베 나오자부로의 일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요즘 병사들이 여자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닌다는 추잡한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많다. 이는 피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설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판단.  . .”

상해 파견군 참모부장 오카무라 야스지는 이렇게 회상했다.

위안부 문제를 생각한다.  . .이렇게 말하는 나는 부끄럽지만 위안부 안의 창설자다. 쇼와7년(1932)의 상하이 사변 때 두 세 건의 강간죄가 발생했으므로 파견군 참모부장이었던 나는 그곳 해군을 본떠 나가시키 현지사에게 요청하여 위안부단을 불러들였다. 그 후 강간죄가 완전히 그쳤기 때문에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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