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와 전격전(제발 붉은 악마식 박수는 이제 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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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탈로즈 작성일09-12-06 12:17 조회6,728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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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축구 전술과 군사적인 전술이 유사하다고 썼다가 설득력이 약할 것 같아서 수정했었다.
그러나 축구전술과 군사적인 전술 사이에 흡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당시 축구국가대표 감독 히딩크는 강팀들을 상대로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이기기 위한 파격적인 전술을 구사했었다. 그것은 경기 막판에 승부를 거는 것으로서 4명의 공격수를 5명으로 늘린 것이었다. 시간 제한이 있고 룰이 엄연한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경기 막판에 승부를 거는 것이 좋은 전술이다. 골이 적게 나는 축구같은 종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군사적으로는 초기 기선제압을 위해 전쟁 초기에 기습 전격전을 단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세계제2차대전과 6.25에서 독일군과 인민군이 기습해서 거둔 효과는 단기적인 전쟁이었다면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르망디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이 실패하기는 했으나 독일군은 유럽 전역을 그리고 북한은 대구 부산만 더 일찍 점령했으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겠나?
유럽은 너무 넓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좁았다. 그래서 세계제2차대전 당시의 유럽보다 6.25 당시 대한민국의 위기가 훨씬 중차대한 것이었다. 다행히 양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바람에 독일은 패전했고 한반도는 휴전이 되었으나 미국의 뿌리인 유럽대륙만큼 애착이 갈 리가 없었던 은둔의 땅에 미국이 개입한 것은 어쩌면 신의 가호가 아니었을까? 그런 대한민국을 안보불감증으로 방치하는 것은 신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히딩크의 막판 공격 전술과 독일군의 아르덴느 돌파와 북한의 일요일 새벽 6.25 기습남침은 전격전이었던 것이다.
또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에서 멀티플레이어 전술을 구사했다. 각 포지션의 선수들은 자기 포지션 외의 포지션을 1개 이상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었다. 그래서 공격과 수비의 수를 사실상 늘리는 효과를 보았다. 그런 상태로 공격수를 한명 더 늘렸으니 한국군이 이런 식의 군사 전술을 구사한다면 사단 몇개를 증원한 것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북한이 이런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10만을 훨씬 상회하는 특수부대를 운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해방어를 맡고 있는 해병대를 줄인다는 발상을 하는 대한민국은, 정확히 친북좌파나 위장세력들은 대체 누구의 편이더란 말이냐?
북한의 이 특수부대들이 유사시 하늘에서는 레이더에 안잡히는 AN2기 등으로 해안에선 고속공기부양정으로 지하에선 남침땅굴로 전격적으로 기습할 때 대한민국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비를 잘해서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추고 적의 전략전술을 간파한다면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는 북한군의 전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작전전환을 막아서 한미동맹을 존속시켜야만 하며 적에게 우리의 전력을 노출시키고 우리 국군의 정신력 해이를 조장하는 국방백서를 특히 주적개념을 전처럼 환원시켜야 한다. 우리의 주적은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북한이라고...
2000년 월드컵에서 그렇게 선전하던 우리 국가대표팀은 3.4위 결정전에서, 선수들 중 가장 믿음직스러웠던 홍명보 선수가 그만 방심해서 경기초반에 터키에 실점의 빌미를 주고 만다. 당시에 승리한 터키 국가대표 감독은 한국의 프로축구팀 중 선수들이 가장 좋은 팀 중의 하나를 맡았는데도 몇년동안 우승 한번 못한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한국팀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끌어 신드롬을 일으켰던 히딩크의 마법도 2006년 호주팀의 16강 후퇴(히딩크로 봐서는),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의 러시아 탈락으로 약발이 다 되었음이 증명되었다. 한국팀은 정신력과 전술과 체력보강으로 4강까지 이끌 수 있었으나 호주팀의 경우는 체력을 너무 과신해서 소홀했는지 또 러시아팀은 보드카 음주습관을 다잡지 못했는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히딩크의 단기전 전술은 대비하는 팀에게는 소용이 덜하다는 것인데 우리의 안보에 적용해도 될만한 교훈은 아닐까?
대한민국이 2002년 월드컵에서 막판멀티화전격전술로 4강(32개팀 중), 북한축구팀이 1966년 월드컵에서 사다리전법으로 8강(16개팀 중)에 진출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 또 하나는 상대팀들이 과소평가해서 베일에 가려진 두 팀의 전술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대한민국이 2002년에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활용한 측면이 있었는데 당시의 축구관계자들이 월드컵 전부터 몇년에 걸쳐 준비했듯이 지금 대한민국의 친북좌파들이 수십년간 적화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성과를 거두어 사법부(빨갱이 육성은 몇십년지 대계?)까지 장악하기 직전단계라고 볼 때 북한의 위협과 더불어 친북좌파들의 발본색원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월드컵 4강의 국내적 국제적 웅비의 호기는 붉은 악마라는 용어의 상징성 때문인지, 김대중을 비롯한 친북좌파들이 조장한 여중생 사망을 빙자한 촛불광란으로 흘러 좌파 2기의 탄생을 부채질했고 결국 대한민국의 친북좌파화를 공고화시켰다. 제발! 스포츠(연예계와 더불어)에 넋을 놓지 말고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단련되면 6.25의 역전과 월남전에서 증명되었듯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축구도 저변이 더 확대되고 체계화되면 자력으로 다시 4강에 진출할 수 있고 우승도 할 수 있다.
불가능이 없는 민족인데 친북좌파들은 바람을 빼고 자빠졌었던 지랄같은 세월이여, 물렀거라.
그러나 축구전술과 군사적인 전술 사이에 흡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당시 축구국가대표 감독 히딩크는 강팀들을 상대로 소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이기기 위한 파격적인 전술을 구사했었다. 그것은 경기 막판에 승부를 거는 것으로서 4명의 공격수를 5명으로 늘린 것이었다. 시간 제한이 있고 룰이 엄연한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경기 막판에 승부를 거는 것이 좋은 전술이다. 골이 적게 나는 축구같은 종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군사적으로는 초기 기선제압을 위해 전쟁 초기에 기습 전격전을 단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세계제2차대전과 6.25에서 독일군과 인민군이 기습해서 거둔 효과는 단기적인 전쟁이었다면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르망디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이 실패하기는 했으나 독일군은 유럽 전역을 그리고 북한은 대구 부산만 더 일찍 점령했으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겠나?
유럽은 너무 넓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좁았다. 그래서 세계제2차대전 당시의 유럽보다 6.25 당시 대한민국의 위기가 훨씬 중차대한 것이었다. 다행히 양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바람에 독일은 패전했고 한반도는 휴전이 되었으나 미국의 뿌리인 유럽대륙만큼 애착이 갈 리가 없었던 은둔의 땅에 미국이 개입한 것은 어쩌면 신의 가호가 아니었을까? 그런 대한민국을 안보불감증으로 방치하는 것은 신에 대한 배신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히딩크의 막판 공격 전술과 독일군의 아르덴느 돌파와 북한의 일요일 새벽 6.25 기습남침은 전격전이었던 것이다.
또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에서 멀티플레이어 전술을 구사했다. 각 포지션의 선수들은 자기 포지션 외의 포지션을 1개 이상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었다. 그래서 공격과 수비의 수를 사실상 늘리는 효과를 보았다. 그런 상태로 공격수를 한명 더 늘렸으니 한국군이 이런 식의 군사 전술을 구사한다면 사단 몇개를 증원한 것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북한이 이런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10만을 훨씬 상회하는 특수부대를 운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해방어를 맡고 있는 해병대를 줄인다는 발상을 하는 대한민국은, 정확히 친북좌파나 위장세력들은 대체 누구의 편이더란 말이냐?
북한의 이 특수부대들이 유사시 하늘에서는 레이더에 안잡히는 AN2기 등으로 해안에선 고속공기부양정으로 지하에선 남침땅굴로 전격적으로 기습할 때 대한민국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비를 잘해서 만반의 대응태세를 갖추고 적의 전략전술을 간파한다면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는 북한군의 전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작전전환을 막아서 한미동맹을 존속시켜야만 하며 적에게 우리의 전력을 노출시키고 우리 국군의 정신력 해이를 조장하는 국방백서를 특히 주적개념을 전처럼 환원시켜야 한다. 우리의 주적은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북한이라고...
2000년 월드컵에서 그렇게 선전하던 우리 국가대표팀은 3.4위 결정전에서, 선수들 중 가장 믿음직스러웠던 홍명보 선수가 그만 방심해서 경기초반에 터키에 실점의 빌미를 주고 만다. 당시에 승리한 터키 국가대표 감독은 한국의 프로축구팀 중 선수들이 가장 좋은 팀 중의 하나를 맡았는데도 몇년동안 우승 한번 못한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한국팀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끌어 신드롬을 일으켰던 히딩크의 마법도 2006년 호주팀의 16강 후퇴(히딩크로 봐서는),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의 러시아 탈락으로 약발이 다 되었음이 증명되었다. 한국팀은 정신력과 전술과 체력보강으로 4강까지 이끌 수 있었으나 호주팀의 경우는 체력을 너무 과신해서 소홀했는지 또 러시아팀은 보드카 음주습관을 다잡지 못했는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히딩크의 단기전 전술은 대비하는 팀에게는 소용이 덜하다는 것인데 우리의 안보에 적용해도 될만한 교훈은 아닐까?
대한민국이 2002년 월드컵에서 막판멀티화전격전술로 4강(32개팀 중), 북한축구팀이 1966년 월드컵에서 사다리전법으로 8강(16개팀 중)에 진출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 또 하나는 상대팀들이 과소평가해서 베일에 가려진 두 팀의 전술에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대한민국이 2002년에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활용한 측면이 있었는데 당시의 축구관계자들이 월드컵 전부터 몇년에 걸쳐 준비했듯이 지금 대한민국의 친북좌파들이 수십년간 적화를 위해 준비한 것들이 성과를 거두어 사법부(빨갱이 육성은 몇십년지 대계?)까지 장악하기 직전단계라고 볼 때 북한의 위협과 더불어 친북좌파들의 발본색원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월드컵 4강의 국내적 국제적 웅비의 호기는 붉은 악마라는 용어의 상징성 때문인지, 김대중을 비롯한 친북좌파들이 조장한 여중생 사망을 빙자한 촛불광란으로 흘러 좌파 2기의 탄생을 부채질했고 결국 대한민국의 친북좌파화를 공고화시켰다. 제발! 스포츠(연예계와 더불어)에 넋을 놓지 말고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단련되면 6.25의 역전과 월남전에서 증명되었듯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축구도 저변이 더 확대되고 체계화되면 자력으로 다시 4강에 진출할 수 있고 우승도 할 수 있다.
불가능이 없는 민족인데 친북좌파들은 바람을 빼고 자빠졌었던 지랄같은 세월이여, 물렀거라.
댓글목록
곰돌이님의 댓글
곰돌이 작성일미친놈들의 광란 입니다! 흐흣님의 글 동감동감!!
흐훗님의 댓글
흐훗 작성일곰돌이님 편히 쉬시고 계신지요. 아까 다른 분의 글에 올리신 정말 좋은 댓글 잘 봤습니다., 안보 걱정하다보니 발상이 떠올라서 올려봤습니다. ^^
청곡님의 댓글
청곡 작성일시스템 흐흣
오리모가지님의 댓글
오리모가지 작성일
시스템의 흐흣님!!!!
최곱니다